
서울 여행을 계획할 때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강남, 홍대, 이태원처럼 유명한 동네는 늘 사람에 치이고 막상 가보면 실망스러울 때도 있죠. 저는 그 대안으로 성북동을 적극 추천합니다. 조용하면서도 볼거리와 먹거리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 뚜벅이 하루 코스로는 이만한 동네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북동 소품샵, 지갑을 열게 만드는 골목
성북동 골목을 처음 걷는 분들은 대부분 한 가지 문제를 겪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자주 발걸음이 멈춘다는 것입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골목 곳곳에 숨어 있어서, 일정대로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간 소복소복이라는 소품샵에서 헬로키티 컵을 하나 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성북동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감성의 소품샵이 밀집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랜덤 인형 뽑기처럼 소소한 물건에도 손이 가고, 토끼 베개 커버나 개구리 모양 소품 같은 독특한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됩니다.
굿모닝제너럴스토어도 꼭 들러볼 만한 공간입니다. 저는 여기서 도자기 컵을 하나 구매했는데, 매장 안에는 유리컵, 도자기류, 생활 소품들이 큐레이션(curation)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큐레이션이란,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특정 콘셉트와 감성에 맞춰 상품을 선별·배치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 덕분에 매장 자체가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서울은 트렌드 소비재의 순환 속도가 지방에 비해 월등히 빠릅니다. 실제로 서울의 소매 유통 집중도는 전국 1위 수준입니다(출처: 통계청). 그 말인즉, 성북동처럼 작은 골목 상권에서도 트렌디한 소품과 굿즈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저로서는 이런 점이 서울 여행의 큰 묘미 중 하나였습니다.
성북동 소품샵을 알차게 돌아보려면 이 순서를 참고해 보세요.
-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도보로 골목 진입
- 소복소복 등 아기자기한 소품샵 탐색
- 굿모닝제너럴스토어(3층)에서 생활 소품 구경
성북구립미술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택
미술관을 여행 코스에 넣는 것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저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미술사(Art History)를 꾸준히 공부해 왔습니다. 미술사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미술 양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작품을 보는 눈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 덕분에 성북구립미술관 방문이 단순한 관람을 넘어 굉장히 풍부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관람해 보니,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서 화가의 붓 터치 하나하나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습니다. 물방울을 표현한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인쇄물이나 모니터 화면으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질감(texture)이 느껴졌거든요. 여기서 질감이란 재료와 기법에 따라 화면 표면에 생기는 물리적·시각적 특성을 의미하며, 실제 원화를 직접 보아야만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뒷골목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한옥 카페가 근처에 있는데, 저는 작년 여름에 이곳에서 빙수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 있던 상태에서 먹은 그 빙수는, 솔직히 지금껏 먹어본 빙수 중 손에 꼽을 만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는 요즘, 성북동을 방문한다면 수연산방의 빙수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문화 예술 활동 조사에 따르면, 미술관·박물관 방문이 여행 만족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미술관 한 곳을 더하는 것만으로 여행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쇼핑과 식사로만 채운 하루와, 전시 관람을 중간에 넣은 하루는 나중에 기억되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길상사와 맛집, 성북동 여행의 마지막 퍼즐
전시를 보고 나온 후에 체력이 남는다면, 길상사(吉祥寺)까지 걸어 올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성북동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봄철에는 벚꽃이 줄지어 피어 있고, 골목 사이사이로 예쁜 단독주택들이 보여서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길상사 안에는 침묵의 방이 있어 잠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도심형 사찰(urban temple)이라는 특성상, 복잡한 시내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이런 고요한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도심형 사찰이란 도시 내부에 위치하면서도 전통 사찰의 분위기와 기능을 유지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절 안의 카페인 조셉의 커피나무도 빈티지한 계단과 야외 좌석이 인상적이어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쉬어가기에 딱 좋습니다.
식사 쪽으로는 선택지가 꽤 넓습니다. 저는 카레집에서 피시 카레를 먹었는데, 평소 집에서 먹던 시판 카레와는 완전히 다른 맛에 놀랐습니다. 스파이스 블렌딩(spice blending)이 섬세하게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파이스 블렌딩이란 고수, 커민, 터메릭 등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 내는 조리 기법을 말합니다. 저는 고수를 뺐는데도 충분히 깊은 맛이 났습니다.
빵 쪽은 샤프 블랑과 밀곡간 두 곳을 들렀는데, 샤프 블랑의 버터떡은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버터떡 중 단연 1등이었습니다. 찹쌀 도넛 같은 쫄깃함에 버터의 고소함이 더해져서, 집에 돌아와 에어프라이어에 다시 돌려 먹었을 정도입니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 호프집에서 수제 돈가스와 하이볼을 곁들인 것도 성북동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였습니다.
성북동은 관광지로서의 화려함보다는 로컬(local) 감성의 깊이로 승부하는 동네입니다. 유명 관광지에 피로를 느끼는 분이라면, 이 동네가 꽤 좋은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번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같은 코스를 다시 돌아볼 생각입니다. 봄이 가기 전에, 혹은 한여름 빙수 시즌에 맞춰 한번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