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에 맛집이 이렇게 많은 줄 아셨나요? 저는 솔직히 군산 하면 근대역사 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부산에서 차로 4시간, 차 없이도 걸어서 웬만한 곳을 다 닿을 수 있는 이 조용한 도시가 의외로 맛집의 밀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군산의 첫 한 끼, 중화비빔밥으로 시작하다
군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다원이었습니다. 주문한 메뉴는 중화비빔밥. 중화비빔밥이라고 하면 대부분 간장 베이스의 부드러운 양념을 떠올리실 텐데, 제가 경주에서 먹던 것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경상도에서 먹는 중화비빔밥은 살짝 주황빛이 돌고 자극적이지 않은 편인데, 다다원의 중화비빔밥은 화력을 높여 재료를 볶는 조리 방식인 웍 쿠킹(Wok Cooking)을 확실히 살린 불향이 강하게 났습니다. 여기서 웍 쿠킹이란 중국요리에서 사용하는 반구형 팬인 웍을 고온의 화력으로 빠르게 볶아내는 조리법으로, 재료에 특유의 그을린 향, 즉 웍헤이(Wok Hei)를 입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쉽게 말해 불맛이 음식 전체에 배어드는 방식입니다.
양념 색도 꽤 빨개서 처음에는 매울 것 같아 조금 겁을 먹었는데, 저는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다 비워냈습니다. 맵지만 맛있는 매운맛이었달까요. 씹을수록 불향이 올라오고 밥이랑 비볐을 때 그 조화가 꽤 좋았습니다. 경주에서 먹던 버전보다 조금 더 자극적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새롭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이성당 단팥빵과 영국빵집, 군산 제과 문화의 두 축
군산에는 빵을 빼놓으면 섭섭합니다. 이성당은 1945년에 문을 연 국내 현존 최고령 빵집으로, 그 역사성 하나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건물이 두 동으로 나뉘어 있었고, 한쪽에서는 즉석에서 구운 빵을, 다른 한쪽에서는 포장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팥빵을 골랐는데, 이런 옛날 빵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 이상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방문 시간이 꽤 늦었음에도 진열대에 빵 종류가 많이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서울의 유명 빵집처럼 오픈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여행객 입장에서는 꽤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성당 못지않게 주목받는 곳이 영국빵집입니다. 경주에도 영국제과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어서 이름이 비슷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는데, 분위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든 빵이 개별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위생 측면에서 꽤 철저한 편이었고, 선물용으로 사 가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집에 가져갈 빵을 한아름 샀습니다. 군산의 제과 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사 깊은 로컬 베이커리(Local Bakery)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로컬 베이커리란 지역 고유의 레시피와 제법을 오랜 시간 유지해온 동네 빵집을 의미하며, 프랜차이즈 빵집과는 다르게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군산에서 제과 문화가 특히 발달한 배경에는 일제강점기 군산이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던 항구 도시였다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이 시기 유입된 제과 기술이 지역 문화로 정착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출처: 군산시 문화관광).
순돌이 막창과 탱탱만두, 군산 고깃집과 분식의 수준
저녁은 순돌이 곱창집에서 막창으로 해결했습니다. 막창은 소나 돼지의 가장 끝부분 대장을 사용한 부위로, 손질과 조리 방식에 따라 식감과 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대구 이외 지역에서는 동그란 모양 그대로 잘라낸 막창을 먹기가 쉽지 않은데, 순돌이 곱창집은 양념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그란 형태를 살려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직접 가보고 나서 가장 놀란 부분이었습니다. 막창 특유의 쫀득한 텍스처(Texture)가 살아있으면서 양념의 달짝지근함과 불향이 같이 올라와서 쌈에 싸 먹기에 딱이었습니다. 여기서 텍스처란 식감, 즉 씹었을 때 느껴지는 물성과 탄성을 의미하는 조리 용어입니다. 1인분 포장도 가능해서 혼자 여행하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탱탱만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치만두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하고 갔는데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먹는 김치만두는 간이 센 편인데, 탱탱만두의 김치만두는 김치를 한 번 헹궈 삼삼하게 만든 느낌이랄까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결국 먹고 나올 때 포장까지 챙겨왔습니다.
군산에서 제가 먹은 음식 중 인상 깊었던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다원 중화비빔밥: 강한 웍헤이(불향)와 매콤한 양념이 특징
- 이성당 단팥빵: 늦게 방문해도 품절 걱정이 적은 실용적인 빵집
- 영국빵집: 개별 포장으로 선물용으로 적합
- 순돌이 곱창집 막창: 1인분 포장 가능, 동그란 막창 형태 유지
- 탱탱만두 김치만두: 삼삼하고 담백한 속 맛이 특징
- 태성반점 짬뽕: 해물이 풍부하고 국물이 진한 군산식 짬뽕
뚜벅이로도 충분한 군산, 숙소 선택이 여행의 질을 바꾼다
군산은 차 없이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번 여행 내내 도보로 이동했는데, 주요 맛집과 명소들이 반경 1~2km 안에 모여 있어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도보 여행, 즉 뚜벅이 여행의 장점은 골목 구석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동 중에 무인 소품샵을 발견하거나, 예쁜 골목 풍경을 마주치는 식의 예상치 못한 경험이 생기는 건 차로 이동할 때는 얻기 어렵습니다.
숙소도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군산에는 에어프라이어와 인덕션을 갖춘 취사 가능 숙소가 많아서, 포장한 음식을 숙소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막창을 포장해서 숙소 테이블에 차려놓고 먹었을 때의 그 분위기는 꽤 좋았습니다. 실제로 국내 여행 트렌드를 보면 숙박과 식도락을 결합한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형태의 여행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기서 스테이케이션이란 멀리 떠나지 않고 숙소를 중심으로 주변을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 방식을 의미하며, 최근 1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국내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여행하는 1인 여행객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군산처럼 규모가 아담한 도시가 오히려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군산의 도시 특성상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어 차로 이동하면 오히려 일정이 너무 일찍 끝날 수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맛집을 하나씩 찍어가는 여행이 군산의 속도와 잘 맞습니다.
군산이 이렇게 여행하기 좋은 도시인 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역사 유적, 빵, 짬뽕, 만두, 막창까지 한 도시에서 이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차가 없어도 걷기 편하고, 아기자기한 숙소도 많아 혼자 떠나는 1박 2일 여행지로 강하게 추천합니다. 다음에 군산을 간다면 꼭 초원사진관 인근 칼국수와 태성반점 짬뽕을 1순위로 다시 먹어볼 생각입니다.